전세 기간이 끝났는데도 보증금이 돌아오지 않으면, 새로 들어갈 집 잔금일은 코앞인데 목돈이 묶여 발이 묶입니다. 그렇다고 임차인이 손 놓고 당하는 구조는 아닙니다. 집주인이 돈을 내주지 않는 한 임차인도 집을 비울 의무가 없고, 사정이 급해 먼저 옮겨야 한다면 이미 갖춘 권리를 지켜 두는 길이 있으며, 끝내 버티는 집주인의 재산을 강제로 헐어 받아 내는 방법도 마련돼 있습니다. 관건은 이 수단들을 어떤 차례로 꺼내 드느냐입니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안 주면 집을 비워 줘야 하나요?
비워 주지 않아도 됩니다. 임대차가 끝나면 집주인은 보증금을 돌려줄 의무를 지는데, 이때 임차인이 집을 넘겨주는 일과 집주인이 보증금을 내주는 일은 어느 한쪽이 앞서는 게 아니라 맞물려 동시에 이행하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민법 제536조). 대법원도 임차인의 주택 인도 의무와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 의무를 동시이행 관계로 봅니다(대법원 1977. 9. 28. 선고 77다1241, 1242 전원합의체 판결). 그래서 보증금을 못 받은 임차인은 그 집에 그대로 눌러살며 버틸 수 있고, 이 점유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가장 센 방패가 됩니다. 다음 세입자가 들어와야 내줄 수 있다는 말은 집주인 쪽 사정일 뿐, 반환을 미룰 정당한 명분이 되지 못합니다. 다만 집주인이 보증금을 실제로 지급하거나 법에 맞게 지급을 제공하고 나면 이 방패는 사라져, 그 뒤에도 버티면 도리어 권한 없는 점유가 됩니다. 돌려받을 액수는 밀린 차임이나 관리비처럼 임대차에서 남은 빚을 뺀 나머지라는 점도 알아 두면 좋습니다. 하나 덧붙이면, 나갈 작정이라면 늦어도 만료 2개월 전까지 갱신하지 않겠다는 뜻을 못 박아 두어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같은 조건으로 계약이 자동 갱신된 것으로 보아(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 퇴거 시점을 두고 다툼이 생길 수 있습니다.
보증금을 지키는 힘은 어디서 나오나요?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이라는 두 힘에서 나오고, 이사한 날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한꺼번에 챙기는 것이 그 시작입니다. 대항력은 집이 팔리거나 경매로 넘어가더라도 새 주인에게 내 임차권을 내세울 수 있는 힘으로, 집에 실제로 들어가 살면서 전입신고를 마치면 그 이튿날부터 생깁니다(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 우선변제권은 경매에서 후순위 권리자보다 앞서 보증금을 배당받는 힘으로, 대항력을 갖춘 상태에서 계약서에 확정일자까지 받아 두면 붙습니다(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의2). 여기에 더해 보증금이 지역별 기준액 이하인 소액임차인이라면 확정일자가 없어도 경매에서 일정액을 다른 담보권자보다 먼저 받는 최우선변제가 인정되는데(주택임대차보호법 제8조), 그 기준액은 지역과 시기마다 달라 따로 확인이 필요합니다. 위기 국면에서 이 두 가지를 갖췄느냐가 결과를 크게 좌우합니다.
보증금을 못 받았는데 이사를 먼저 가야 한다면요?
임차권등기명령을 먼저 신청해 등기가 끝난 것을 확인한 뒤에 나가야 합니다.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은 원칙적으로 그 집에 살며 전입신고를 유지해야 지켜지는데, 보증금도 못 받은 채 다른 데로 옮기고 전입을 빼 버리면 애써 쌓은 권리가 날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쓰는 장치가 임차권등기명령입니다. 임대차가 끝났는데도 보증금을 못 받은 임차인은 집주인 동의 없이 혼자 법원에 신청할 수 있고, 이 등기를 마치고 나면 그 뒤에 이사해 전입을 빼더라도 이미 얻은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이 그대로 남습니다(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의3). 그래서 순서가 승부처입니다. 임차권등기가 끝나기 전에 먼저 집을 비우고 전입을 빼면 그 순간 대항력이 사라지고, 그 뒤 등기를 마쳐도 한번 사라진 대항력은 되살아나지 않은 채 등기한 때부터 새로 생길 뿐입니다(대법원 2025. 4. 15. 선고 2024다326398 판결). 그러면 앞서 자리 잡은 근저당 같은 권리에 밀려 크게 불리해집니다. 신청부터 등기 완료까지 며칠에서 몇 주가 걸릴 수 있으니, 이사 날짜보다 여유 있게 앞당겨 신청해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그래도 안 주면 어떻게 강제로 받아내나요?
강제집행으로 가려면 먼저 집행권원을 손에 넣어야 합니다. 집행권원이란 강제집행의 문을 여는 판결이나 결정을 말하고, 여기에 이르는 길은 크게 둘입니다. 하나는 지급명령입니다. 법정에 나갈 필요 없이 서류만으로 진행돼 값싸고 빠른데, 집주인이 받아 보고도 이의를 내지 않으면 그대로 확정돼 집행권원이 되지만 이의를 걸면 보통의 소송으로 넘어갑니다. 그래서 집주인이 다툴 게 뻔한 상황이라면 지급명령을 거쳤다가 소송으로 이어져 시간만 늘어질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보증금반환청구소송으로, 처음부터 정식 재판으로 맞붙는 방식입니다. 품과 비용은 더 들어도 다툼이 예상되는 사건이라면 오히려 빠른 길일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집행권원을 확보하면 집주인 재산에 강제집행을 걸 수 있고, 살던 그 집을 경매에 부치는 것도 가능하며, 미리 갖춰 둔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이 있으면 그 경매 배당에서 후순위보다 앞서 보증금을 받습니다. 다만 배당금을 손에 쥐려면 원칙적으로 집을 낙찰자에게 넘겨야 하므로, 집을 비우는 때와 배당받는 때를 함께 계산해 두어야 합니다.
처음부터 떼이지 않으려면 무엇을 준비하나요?
가장 좋은 방책은 계약 단계에서 위험을 미리 걷어 내는 것입니다. 계약 전에 등기부를 떼어 선순위 근저당이나 다른 임차인이 얼마나 걸려 있는지 확인하고, 보증금에 견줘 빚이 지나친 집은 애초에 피하는 편이 좋습니다. 이사한 날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곧바로 챙겨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확보해 두는 것도 기본기입니다. 여기에 전세보증금반환보증까지 들어 두면 한결 든든합니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못 돌려줘도 보증기관이 대신 내주는 제도로, 주택도시보증공사와 한국주택금융공사, 서울보증보험 등에서 취급합니다. 다만 보증 대상과 한도, 보증료 같은 조건이 상품마다 다르므로 계약 단계에서 최신 약관을 미리 살펴 두어야 합니다.
마치며
보증금을 제때 못 받으면 당장은 앞이 캄캄해도, 순서를 알고 차근차근 밟으면 지켜 낼 권리가 꽤 많습니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내주지 않는 한 집을 비울 의무가 없다는 점, 사정상 먼저 옮겨야 한다면 임차권등기가 끝난 것을 확인한 뒤 나가야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잃지 않는다는 점이 두 축입니다. 받아 내는 국면에서는 다툼이 보이면 처음부터 소송을 택하고, 집행권원을 쥔 다음 강제집행으로 이어 가면 됩니다. 절차마다 챙길 서류와 시점이 다르고 사안마다 유리한 수가 갈리므로, 막막하면 이른 단계에 변호사와 상의하시길 권합니다.
이 글은 위광복 변호사(법무법인 원결 대표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가사법·노동법 전문변호사, 연세대학교 겸임교수, 법무부장관·보건복지부장관 표창 수상)가 작성했습니다. 구체적 사안에 대한 상담이 필요하시면 변호사와 직접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법률 상담이 필요하시면 화면에 있는 법무법인 원결 카카오톡 채널로 편하게 문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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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법령: 민법 제536조 /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 제3조의2, 제3조의3, 제6조, 제8조
참고 판례: 대법원 1977. 9. 28. 선고 77다1241, 1242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25. 4. 15. 선고 2024다326398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