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만 떨어져 살면 혼인이 정리된다는 말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우리 민법에는 별거를 정한 조문이 아예 없습니다.
별거만 오래 하면 자동으로 이혼이 되나요?
되지 않습니다. 기간을 채운다고 성립하는 이혼은 없습니다.
민법 제840조는 재판상 이혼원인을 여섯 가지로 정해 두었습니다. 배우자의 부정한 행위, 악의의 유기, 배우자나 그 직계존속으로부터 받은 심히 부당한 대우, 자기 직계존속이 배우자로부터 받은 심히 부당한 대우, 배우자의 3년 이상 생사불명, 그리고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입니다. 이 여섯 가지 어디에도 별거라는 항목은 없습니다.
별거가 적용되는 것은 여섯 번째 사유입니다. 법원은 혼인이 회복하기 어려울 만큼 깨졌는지를 여러 사정을 모아 판단하는데, 오랜 기간 떨어져 지내면서 서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사정은 그 판단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자료가 됩니다. 다만 자료일 뿐 요건이 아니어서, 몇 년을 넘기면 인정된다는 기준선은 없습니다.
혼인 파탄에 주된 책임이 있는 쪽이 별거를 길게 끌면서 이혼을 구하는 경우에는 또 다른 법리가 개입합니다. 이 문제는 이혼 소송, 소장을 내고 판결까지 어떤 순서로 진행될까?에서 따로 다뤘습니다.
집을 나오면 악의의 유기가 되나요?
집을 나왔다는 사실 하나로는 되지 않습니다.
민법 제826조 제1항은 부부가 동거하며 서로 부양하고 협조하여야 한다고 정하면서, 정당한 이유로 일시적으로 동거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서로 인용하여야 한다는 단서를 붙였습니다. 동거의무 자체에 예외가 들어 있는 구조입니다.
대법원은 제840조 제2호의 악의의 유기를 정당한 이유 없이 서로 동거·부양·협조하여야 할 부부로서의 의무를 포기하고 다른 일방을 버린 경우로 봅니다(대법원 1998. 4. 10. 선고 96므1434 판결 참조). 누가 먼저 현관을 나섰는지보다, 나올 만한 사정이 있었는지와 나온 뒤에 배우자와 자녀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했는지가 판단을 가른다는 뜻입니다. 폭력이나 심한 모욕을 피해 몸을 옮긴 경우, 상대가 나가라고 해서 나온 경우, 직장이나 치료 때문에 떨어져 지내는 경우는 정당한 이유가 인정될 여지가 큽니다.
별거 중 생활비는 청구할 수 있나요?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혼 전이라면 따로 살아도 부양의무는 그대로입니다.
민법 제826조 제1항의 부양·협조 의무는 혼인이 유지되는 동안 계속되고, 부부의 공동생활에 필요한 비용은 특별한 약정이 없으면 부부가 공동으로 부담합니다(같은 법 제833조). 집을 나눠 산다고 이 의무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상대가 응하지 않으면 가정법원에 처분을 구하면 됩니다. 가사소송법은 민법 제826조와 제833조에 따른 부부의 동거·부양·협조 또는 생활비용의 부담에 관한 처분을 마류 가사비송사건으로 정하고 있습니다(가사소송법 제2조 제1항 제2호 나. 마류사건 제1호). 이혼 소송을 이미 냈다면 그 사건 안에서 사전처분으로 임시 생활비와 양육비를 정해 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같은 법 제62조 제1항). 사전처분에는 집행력이 없어 상대가 따르지 않아도 곧바로 강제집행에 들어가지는 못하지만(같은 조 제5항), 정당한 이유 없이 위반하면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같은 법 제67조 제1항).
미룰수록 받을 돈이 적어집니다. 대법원은 과거의 부양료에 관하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부양을 받을 사람이 이행을 청구했는데도 상대가 이행하지 않아 이행지체에 빠진 이후의 것만 청구할 수 있다고 봅니다(대법원 1991. 11. 26. 선고 91므375 판결 참조). 이 사건에서는 심판청구서가 상대방에게 송달된 다음 날부터의 부양료만 인정되었고,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호소한 것만으로는 이행을 청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생활비가 끊긴 그 무렵에 문자로든 내용증명으로든 달라고 했다는 흔적을 남겨 두셔야 하는 이유입니다.
별거 기간에 모은 재산도 나눠야 하나요?
사실상 혼인이 파탄난 후 한쪽이 형성한 재산은 분할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습니다.
재산분할은 당사자 쌍방의 협력으로 이룩한 재산을 나누는 제도입니다(민법 제839조의2 제2항). 나눌 재산을 확정하는 시점은 재판상 이혼이라면 사실심 변론이 끝나는 날이 원칙입니다. 다만 파탄된 뒤에 생긴 재산 변동이 한쪽의 후발적 사정에 따른 것이고 혼인 중 공동으로 형성한 재산관계와 무관하다면, 그만큼은 분할대상에서 빠집니다(대법원 2019. 10. 31. 선고 2019므12549, 12556 판결 참조).
빚도 같은 잣대로 봅니다. 혼인 생활을 위해 진 빚은 청산 대상이지만, 파탄 이후 한쪽이 공동재산과 무관하게 개인적으로 만든 빚까지 상대가 떠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쟁점은 별거를 시작한 날이 아니라 혼인관계 파탄 시점이 언제로 인정되느냐이고, 그에 따라 나눌 재산의 범위가 달라집니다.
덧붙이면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 있는 2년의 기한은 별거를 시작한 날이 아니라 이혼이 성립한 날부터 셉니다(같은 조 제3항). 10년을 따로 살았어도 아직 이혼 전이라면 기간은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별거를 시작하기 전에 무엇을 정해 두어야 하나요?
앞의 세 가지 다툼이 모두 별거를 시작하던 무렵의 자료로 갈립니다.
먼저 언제부터 따로 살았는지 특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입신고 기록, 새로 맺은 임대차계약서, 이사 비용 영수증, 그 무렵 주고받은 메시지가 그 역할을 합니다. 별거를 시작한 시점의 기록은 파탄 시점을 가늠하는 출발점이고, 파탄 상태가 얼마나 이어졌는지를 보여 주는 자료이기도 합니다.
생활비와 아이 문제는 말로만 하지 마시고 적어 두시기 바랍니다. 매달 얼마를 언제까지 어느 계좌로 보낼지, 아이는 언제 만날지를 담은 문서가 있으면 나중에 부양료를 청구할 때 출발점이 생깁니다.
상대방의 재산은 별거를 시작하는 시점에 파악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부동산 등기사항증명서, 예금과 대출 잔액, 퇴직금 예상액, 보유 주식 수 정도를 파악해 두면, 추후 재산분할에서 주장하기가 훨씬 용이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방 명의의 재산은 확인할 길이 좁아집니다.
마치며
별거는 그 자체로 아무것도 끝내 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흐른다고 혼인이 정리되지 않고, 생활비 문제가 저절로 풀리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정리 없이 시간만 보내면 받을 수 있었던 생활비를 놓치고 나눌 수 있었던 재산의 범위가 줄어듭니다.
원주와 영월에서 이런 상담을 받다 보면 이미 몇 년째 따로 지내면서도 아무 정리를 하지 않은 채 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지금 별거 중이시라면 개시일과 그 시점의 재산 상태부터 정리해 두시고, 생활비가 끊겼다면 청구 의사를 남겨 두십시오. 이혼을 할지 말지 아직 정하지 못하셨더라도 이 정리는 미리 해 두시는 편이 낫습니다.
이 글은 위광복 변호사(법무법인 원결 대표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가사법·노동법 전문변호사, 연세대학교 겸임교수, 법무부장관·보건복지부장관 표창 수상)가 작성했습니다. 법률 상담이 필요하시면 화면에 있는 법무법인 원결 카카오톡 채널로 편하게 문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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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법령: 민법 제826조, 제833조, 제839조의2, 제840조 / 가사소송법 제2조, 제62조, 제67조
참고 판례: 대법원 2019. 10. 31. 선고 2019므12549, 12556 판결 / 대법원 1998. 4. 10. 선고 96므1434 판결 / 대법원 1991. 11. 26. 선고 91므375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