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빌려간 사람이 오랜 기간 갚지 않으면, 곧 사기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자연스레 듭니다. 앞선 두 편이 민사로 떼인 돈을 받아내는 길이었다면, 이번에는 상대가 애초에 속여서 돈을 가져간 경우, 즉 형사 사기가 문제 되는 국면입니다. 다만 법이 말하는 사기는 '갚지 않았다'는 결과만으로 곧장 성립하지 않습니다. 안 갚은 것과 속인 것 사이의 경계가 어디인지, 사기가 성립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알아봅니다.
돈을 안 갚으면 무조건 사기로 고소할 수 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갚지 못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는 형사 사기가 아니라 원칙적으로 민사상 채무불이행에 불과합니다. 형법상 사기죄는 남을 속이고, 바로 그 속임수에 넘어간 상대가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건네주었을 때 비로소 성립하기 때문입니다(형법 제347조). '기망'과 그로 인한 '재산의 이전'이 한 고리로 이어져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빌릴 때만 해도 갚을 마음으로 가져갔는데 이후 장사가 잘 되지 않거나 형편이 어려워져 못 갚게 된 사정이라면, 안타깝더라도 약속을 못 지킨 민사 문제일 뿐 범죄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빌린 돈을 돌려받도록 강제하는 일과 남을 속인 사람에게 형벌을 지우는 일은 적용되는 법적 기준이 다른 영역이어서, 결과적으로 돈이 안 돌아왔다는 사정만 되뇌어서는 사기 고소로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1편의 대여금 청구나 2편의 강제집행이 이런 채무불이행을 겨냥한 민사적 회수 수단이라면, 형사 사기는 성격이 전혀 다른 별개의 문제입니다.
사기인지 아닌지는 무엇을 기준으로 갈리나요?
돈을 빌린 바로 그 시점에 갚을 뜻과 능력이 있었는지가 기준입니다. 대법원은 사기죄가 되는지를 행위 당시를 기준으로 따져, 빌릴 무렵 변제할 의사와 능력이 있었다면 그 뒤에 갚지 못했더라도 이는 민사상 채무불이행일 뿐 사기죄로 볼 수 없다고 합니다(대법원 2016. 4. 28. 선고 2012도14516 판결). 거꾸로 말하면, 처음부터 갚을 생각도 능력도 없으면서 마치 있는 것처럼 꾸며 돈을 받아 냈다면 그 순간 사기가 됩니다. 여기서 '갚을 생각이 없었다'가 반드시 작정하고 떼먹으려 든 경우만 가리키지는 않습니다. 추후 대여금 변제에 문제가 있을 사정들이 있음에도 이를 숨긴 채 돈을 받았다면, 이른바 미필적 고의만으로도 편취의 고의가 인정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눈여겨볼 지점은 지금 당장 못 갚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돈을 빌릴 그 무렵 어떤 처지였고 무슨 말을 했는가입니다. 오래 못 받았다는 점을 앞세우기보다, 돈이 건너갈 무렵 상대의 형편과 발언을 드러내는 편이 훨씬 중요합니다.
가까운 사이에 사정을 알고 빌려준 돈도 사기가 되나요?
그런 경우에는 사기로 인정받기가 오히려 더 까다롭습니다. 같은 대법원 판결은, 빌려주는 쪽이 상대의 신용 상태를 이미 알고 앞으로 갚지 못할 위험까지 내다볼 수 있었던 상황이라면, 빌릴 당시 변제 의사나 능력, 차용 조건처럼 중요한 사항을 거짓으로 말한 것과 같은 별도의 사정이 없는 한, 나중에 제대로 갚지 못했다는 것만으로 상대가 속였다거나 편취의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위 2012도14516 판결). 친분이 두터워 상대 사정을 뻔히 알면서 건넨 돈일수록 이 부분이 함께 고려됩니다. 잘 아는 사이라는 점이 사기 인정에는 되레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정황이 있으면 사기로 인정되기 쉬운가요?
의도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어서, 외부적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법원도 편취의 고의는 피고인이 자백하지 않는 한 범행 전후의 재력과 환경, 범행 내용, 거래가 이행된 경과, 피해자와의 관계 같은 객관적 사정을 두루 살펴 가릴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위 2012도14516 판결). 실무에서 사기로 평가되는 정황은 대개 이러합니다. 빌릴 때 이미 감당 못 할 빚에 눌려 사실상 갚을 여력이 없었던 경우, 사업에 쓴다고 둘러대고 실제로는 도박이나 다른 빚 갚는 데 돌린 경우, 처음부터 새로 빌린 돈으로 먼저 진 빚을 메우는 돌려막기였던 경우, 돈을 손에 쥐자마자 연락을 끊고 사라진 경우가 그렇습니다.
질문자처럼 한 사람이 여러 명에게 동일한 수법으로 돈을 빌리고 갚지 않았다면, 이는 편취 고의를 받쳐 주는 강력한 정황이 됩니다. 게다가 이런 짓이 되풀이되면 상습사기로 더 무겁게 처벌될 수 있으므로(형법 제351조), 같은 피해를 본 사람들의 존재와 진술을 함께 확보해 두면 도움이 됩니다. 빌릴 무렵 오간 대화, 건넨 돈이 실제로 어디에 흘러갔는지, 비슷한 시기에 다른 이들에게서도 같은 식으로 돈을 빌렸는지 같은, 빌릴 당시의 사정을 비추는 자료가 두터울수록 사기로 볼 여지도 함께 커집니다. 그렇다고 이런 정황 몇 개가 눈에 띈다고 해서 곧장 사기로 못 박히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은 빌릴 당시에 속인 것으로 볼 수 있느냐로 돌아오고, 그 증명이 충분한지에 따라 결론이 갈립니다.
사기로 처벌되면 형은 얼마나 무겁고, 시효는 언제까지인가요?
사기죄의 형은 최근 대폭 무거워졌습니다. 2025년 12월 23일부터 시행된 개정 형법에서 사기죄는 2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됩니다(형법 제347조). 개정 전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이었으니, 상한이 두 배가량 늘어난 셈입니다. 다만 형벌은 행위 당시의 법에 따르는 것이 원칙이어서(형법 제1조 제1항), 뒤에 형이 무거워졌다고 해서 개정 전에 저지른 행위에까지 그 무거운 형을 소급하지는 않습니다. 개정이 시행되기 전에 빌려 간 사안이라면 종전의 형인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잣대가 됩니다. 질문자처럼 몇 해 전에 오간 돈이 문제라면 개정 전 형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여기에 여러 사람을 상대로 되풀이한 상습성이 인정되면 그 형의 2분의 1까지 더해질 수 있습니다(형법 제351조).
시간 문제도 함께 챙겨야 합니다. 사기죄의 공소시효는 10년이고(형사소송법 제249조 제1항 제3호), 법정형이 올라간 뒤에도 이 기간 자체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시효의 출발점은 대체로 범행이 종료된 때, 그러니까 상대가 돈을 손에 넣은 시점입니다. 시효가 지나 버리면 정황이 아무리 또렷해도 형사처벌을 물을 수 없으니, 돈이 오간 지 한참 된 사안이라면 남은 기간부터 헤아려야 합니다.
고소만 접수해 두면 공소시효가 멈추나요?
아닙니다. 흔히 오해하는 대목인데, 고소장을 낸 것만으로는 공소시효가 멈추지 않습니다. 공소시효는 검사가 공소를 제기해야 비로소 정지되기 때문입니다(형사소송법 제253조). 그래서 시효가 얼마 남지 않았다면 고소만 해 두고 마음을 놓을 일이 아니라, 수사와 기소가 시효 안에 마무리되도록 서둘러 움직여야 합니다. 시효 막바지에 고소장만 제출해 두고 손 놓고 있다가 그사이 시효가 완성돼 버리는 낭패를 피하려면, 처음부터 남은 기간을 계산해 일정을 짜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형사로 이기면 떼인 돈도 돌려받을 수 있나요?
형사 고소가 받아들여져 상대에게 유죄가 선고되더라도, 그것만으로 떼인 돈이 곧장 내 손에 돌아오지는 않습니다. 형사와 민사는 서로 다른 절차이기 때문입니다. 유죄판결은 국가가 피고인에게 형벌을 지우는 것일 뿐, 피해자에게 돈을 물어 주라고 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사기로 유죄가 나와도 실제 회수는 1편과 2편에서 본 민사 절차를 따로 밟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형사가 회수에 무익하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두 가지 방식으로 도움이 됩니다.
하나는 합의입니다. 피해 회복과 합의는 형을 정할 때 크게 참작돼 형이 가벼워질 수 있으므로, 처벌 수위를 낮추려는 상대가 그제서야 변제에 나서기도 합니다. 다른 하나는 배상명령입니다. 유죄를 선고하는 형사재판에서 법원이 직권으로, 또는 피해자가 신청하면 그 범죄로 생긴 직접적 피해의 배상까지 함께 명할 수 있는 제도이고, 사기 피해도 그 적용을 받습니다(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제25조). 확정된 배상명령은 민사 확정판결처럼 그대로 집행할 수 있어, 굳이 민사소송을 새로 걸지 않아도 집행권원을 쥘 수 있습니다. 다만 배상책임의 범위가 분명하지 않다거나 형사재판이 지나치게 길어질 염려가 있는 때에는 법원이 배상명령을 하지 않을 수 있어(같은 조 제3항), 쟁점이 복잡하게 얽힌 사건은 배상명령을 기대하기 어렵고 결국 민사절차로 풀어야 합니다. 질문자의 경우처럼 앞서 민사에서 판결을 받고 집행까지 끝낸 상황이라면 배상명령으로 새로 챙길 실익은 크지 않고, 이때 형사의 값어치는 오히려 처벌이라는 압박으로 상대가 제 발로 갚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사기 정황이 약한데 고소로 압박해도 될까요?
그건 위험합니다. 사기라 볼 만한 정황이 뚜렷하지 않은데도 돈을 받아 낼 목적으로 형사고소를 밀어붙이면 되레 화살이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습니다. 실체 없이 허위로 고소했다가는 오히려 무고죄에 걸릴 수 있고, 고소를 빌미로 겁을 주어 돈을 받아내려 들면 공갈죄가 문제 될 수 있습니다. 사기로 볼 근거를 갖추고 정당하게 나서는 것과, 그저 밀린 빚을 형사의 힘으로 받아내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마치며
차용사기에서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채권이 얼마나 오래 묶여 있었느냐가 아닙니다. 돈이 건너갈 무렵 상대의 경제 사정이 어땠는지, 같은 시기에 비슷하게 당한 피해자가 또 있었는지처럼, 애초에 갚을 마음이 없었다는 점을 드러내는 자료가 관건입니다. 떼인 돈 회수까지 염두에 둔다면 형사와 민사를 나란히 진행하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형사로 압박하며 합의나 배상명령으로 회수를 노리되, 실제로 돈을 강제로 거둬들이는 몫은 여전히 2편의 민사 집행에 있습니다.
저희 법무법인 원결은 원주에 자리 잡고 인근 제천 등지에서 빌려준 돈의 회수부터 차용사기 고소까지 떼인 돈 문제를 다뤄 왔습니다. 고소가 될 사안인지, 지금 무엇부터 갖춰 두어야 하는지 스스로 가늠이 서지 않는다면, 처음에 큰 가닥을 함께 잡아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위광복 변호사(법무법인 원결 대표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가사법·노동법 전문변호사, 연세대학교 겸임교수, 법무부장관·보건복지부장관 표창 수상)가 작성했습니다. 구체적 사안에 대한 상담이 필요하시면 변호사와 직접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법률 상담이 필요하시면 화면에 있는 법무법인 원결 카카오톡 채널로 편하게 문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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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법령: 형법 제1조, 제347조, 제351조 / 형사소송법 제249조, 제253조 /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제25조
참고 판례: 대법원 2016. 4. 28. 선고 2012도14516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