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이일수록 돈은 차용증 없이 오갑니다. 그러다 상대가 갚기를 미루기 시작하면, 막상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독촉 문자만 되풀이하다 시간을 흘려보내기 쉽습니다. 대여금을 실제로 돌려받는 데에는 나름의 순서가 있고, 그 순서를 밟을수록 회수 가능성이 올라갑니다. 차용증이 없어도 길은 있지만, 시효라는 시간제한이 있어 늦어질수록 불리해집니다.
차용증이 없는데도 빌려준 돈을 받을 수 있나요?
받을 수 있습니다. 차용증 한 장 없이 건넨 돈이라도, 계좌이체 기록과 주고받은 메시지, 녹음해 둔 통화, 사정을 잘 아는 지인의 진술을 모으면 빌려줬다는 사실을 세울 수 있습니다. 개인끼리의 돈거래는 오히려 차용증 없이 이뤄지는 쪽이 대부분입니다.
문제는 다른 데서 불거집니다. 돈이 오갔다는 사실 자체는 상대도 인정하는데, 그 돈이 빌려준 것이냐 그냥 준 것이냐를 두고 다투는 경우입니다. 이때 돈을 건넨 사실에 다툼이 없더라도 그것을 빌려준 것이라고 주장하는 쪽에서 대여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립된 입장입니다(대법원 2014. 7. 10. 선고 2014다26187 판결). 그래서 상대가 '받은 돈(증여)이지 빌린 돈(대여)이 아니다'라고 나오면 금액이 얼마나 큰지,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 이자나 갚을 날을 정한 정황이 있었는지, 그동안 일부라도 갚은 적이 있는지를 두루 살펴 판단하게 됩니다.
그래서 대여였음을 뒷받침하는 흔적이 승패를 가릅니다. 송금할 때 적요에 '대여'라고 남겼는지, 갚을 날을 문자로 못 박아 두었는지, 상대가 이자든 원금 일부든 실제로 갚은 이력이 있는지가 그런 흔적입니다. 처음에 이런 자료를 챙기지 못했더라도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지금 나누는 대화에서라도 상대가 빌린 게 맞다는 취지로 말하도록 이끌어 캡처해 두면 뒷날 유력한 증거가 됩니다.
소송을 떠올리기 전에, 어떤 증거부터 모아야 하나요?
가장 먼저 할 일은 빌려준 사실을 객관적인 증거로 붙잡아 두는 것입니다. 계좌이체 기록, 돈 이야기가 오간 메신저 대화와 문자, 녹음된 통화, 상대가 조금이라도 갚아 온 내역을 시간 순으로 묶어 두면 언제 얼마가 오갔는지가 또렷해집니다.
그중에서도 계좌이체 내역은 오간 액수와 날짜가 고스란히 찍혀 있어 가장 강력합니다. 반대로 현금으로 쥐여 준 돈은 건넸다는 사실부터가 입증이 까다로우므로, 이런 경우라면 대화 기록이나 상대가 차용을 인정하는 말을 특히 공들여 확보해 두어야 합니다. 카톡과 문자는 대화방을 나가거나 휴대폰을 바꾸면 사라질 수 있으니 미리 캡처하거나 백업해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통화 녹음도 유용한 카드입니다. 내가 통화 당사자로 참여한 녹음은 상대의 동의가 없어도 증거로 쓸 수 있으므로, 전화로 빌린 사실이나 갚겠다는 약속을 확인해 두는 것도 방법입니다.
내용증명은 꼭 보내야 하나요?
반드시 보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내 두면 얻는 게 많습니다. 내용증명 자체에 상대를 강제하는 힘이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어느 시점에 어떤 조건으로 변제를 요구했는지가 문서로 남고, 상대에게는 이제 정식 절차로 넘어가겠다는 분명한 신호가 됩니다. 보통 빌려준 날짜와 금액, 갚을 기한을 적어 보냅니다.
더 중요한 기능이 하나 있습니다. 내용증명 독촉은 소멸시효의 진행을 잠시 멈추는 최고가 됩니다. 다만 최고만으로는 6개월 안에 소송 같은 다음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시효중단의 효력이 유지되지 않으므로(민법 제174조), 독촉 한 번으로 안심하지 말고 지급명령이나 소송으로 이어질 계획까지 함께 세워 두어야 합니다.
원금 말고 이자나 지연손해금도 받을 수 있나요?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은 원금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자를 약정해 두었다면 그 이율대로, 이자를 정하지 않았더라도 갚기로 한 날이 지난 뒤부터는 지연손해금을 붙여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자에 관한 약정이 전혀 없을 때 적용되는 민사 법정이율은 연 5%입니다(민법 제379조). 가령 이자 약정 없이 2천만원을 빌려줬다면, 갚기로 한 날의 다음 날부터 그 원금에 연 5%가 붙기 시작합니다.
사건이 소송으로 넘어가면 이 이율이 한 단계 뜁니다. 소장(지급명령을 신청했다면 그 정본)이 상대에게 송달된 다음 날부터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대통령령으로 정한 높은 이율, 현재 연 12%가 적용됩니다(같은 법 제3조). 상대가 다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범위에서는 이 이율이 빠지지만, 뚜렷한 근거 없이 버티는 경우라면 이 지연손해금이 만만치 않은 압박이 됩니다. 그러니 청구액을 적을 때 원금만 달랑 적지 말고, 이자와 지연손해금을 반드시 얹어 계산해 두는 편이 좋습니다.
반대로 약정 이자는 무한정 높일 수 없습니다. 빌려줄 때 정할 수 있는 최고이자율은 이자제한법이 대통령령에 위임해 정하는데, 그 상한은 계약을 맺거나 갱신한 시점을 기준으로 적용됩니다. 2021년 7월 7일 이후의 계약은 연 20%가 상한이고, 그 전에 맺은 계약에는 당시의 더 높은 상한(직전에는 연 24%)이 적용됩니다(이자제한법 제2조). 상한을 넘는 부분은 무효이고, 상대가 이미 초과 이자를 냈다면 그 초과분은 원금 변제에 충당된 것으로 보아 남은 원금에서 빼고 계산합니다. 이자를 지나치게 높게 약정해 두면 오히려 돌려받을 원금이 깎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시간이 더 지나면 아예 못 받게 되나요?
그럴 수 있습니다. 빌려준 돈을 돌려받을 권리에도 유효기간이 있어서, 그 기간을 넘기면 더는 청구하지 못합니다. 빌려준 돈은 원칙적으로 10년 동안 청구하지 않으면 소멸시효가 완성되어 권리 자체가 사라집니다(민법 제162조 제1항). 이 시효는 보통 갚기로 한 날, 곧 변제기부터 세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갚을 날을 따로 정하지 않고 빌려준 경우라면, 빌려준 사람이 언제든 갚으라고 청구할 수 있는 돈이어서 돈을 빌려준 날부터 시효가 진행하는 것으로 봅니다(민법 제166조 제1항). 차용증도 없고 기한도 정하지 않았다면, 한 번도 갚으라고 말한 적이 없어도 시효는 이미 흐르고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빌려준 쪽이 상인이어서 그 대여가 상행위에 해당하면 시효가 5년으로 짧아지지만(상법 제64조), 개인끼리 오간 돈이라면 대체로 10년으로 보면 됩니다.
다행히 시효는 중간에 멈춰 세울 수 있습니다. 상대에게 청구를 하거나, 상대 재산에 가압류나 압류를 걸거나, 상대가 빚을 인정하면 시효가 중단되고 그 시점부터 다시 계산됩니다(민법 제168조). 특히 상대가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거나 일부라도 갚는 행동은 빚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어 시효가 새로 시작됩니다. 앞서 본 내용증명은 그 자체로는 6개월 동안만 시효를 붙들어 두는 임시 조치라서, 시효가 임박했다면 독촉에서 멈추지 말고 지체 없이 지급명령이나 소송 단계로 올라서야 합니다. 게다가 판결로 확정된 채권은 원래 시효가 짧았더라도 그 시효가 10년으로 늘어나므로(민법 제165조), 판결이나 확정된 지급명령을 받아 두면 시간에 쫓기는 부담을 크게 덜 수 있습니다.
시효가 다 지난 듯 보여도 곧장 손을 놓을 일은 아닙니다. 소멸시효는 법원이 알아서 적용해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시효가 끝났다고 내세워야 비로소 효력이 생기기 때문에, 상대가 이를 알지 못한 채 넘어가는 일도 있습니다. 게다가 시효가 지난 다음에 상대가 갚겠다는 뜻을 비치거나 실제로 일부를 변제하면, 시효로 얻은 이익을 스스로 포기한 것으로 보아 그때는 다시 청구할 수 있습니다.
지급명령과 소송, 어떤 방법이 더 빠른가요?
상대가 빌린 사실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으리라 보이면, 가장 빠르고 저렴한 길은 지급명령입니다. 지급명령은 법원이 채권자의 신청만으로 상대에게 돈을 갚으라고 명하는 독촉절차입니다(민사소송법 제462조). 상대가 지급명령을 받고 2주 안에 이의하지 않으면 그대로 확정되어, 강제집행의 근거가 되는 집행권원이 됩니다.
그렇다고 지급명령과 소송이 완전히 갈라진 두 길인 것은 아닙니다. 상대가 이의를 제기하면 사건은 곧바로 정식 소송절차로 넘어가니, 둘은 결국 한 줄기로 이어져 있습니다. 다만 지급명령을 쓰려면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상대의 주소를 파악해 서류를 띄울 수 있어야 하고, 주소를 몰라 공시송달로 해야 하는 사정이라면 이 절차는 활용할 수 없습니다(같은 조 단서). 그런 상황에서는 지급명령을 건너뛰고 곧장 소송을 낸 뒤, 법원의 주소보정명령을 받아 상대의 주소를 좇아 가며 절차를 이어 가게 됩니다.
소장을 어디에 내는지도 짚고 넘어가면 좋습니다. 원칙적으로는 상대가 사는 곳의 법원이지만, 금전채무는 특별한 약정이 없으면 채권자의 주소지에서 갚아야 하는 지참채무이므로(민법 제467조 제2항), 채권자인 내 주소지를 관할하는 법원에도 낼 수 있습니다(민사소송법 제8조). 드는 돈은 청구액에 비례하는 인지대와 서류 송달에 쓰는 송달료 정도인데, 액수가 같아도 지급명령이 소송보다 인지대가 덜 듭니다. 게다가 요즘은 전자소송으로 법원 문턱을 밟지 않고도 접수와 진행이 되니, 금액이 크지 않다면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스스로 밀고 나가는 이들도 제법 있습니다.
마치며
떼인 돈을 되찾는 일은 기세가 아니라 절차로 풀립니다. 우선 빌려준 사실을 증거로 붙들어야 하고, 받을 원금과 이자를 빠짐없이 셈해 두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남은 시효를 확인해, 상대가 순순히 응할지에 따라 지급명령과 소송 가운데 방법을 고르면 됩니다. 종이 한 장짜리 차용증이 없더라도 대여였음을 말해 주는 정황을 갖추면 승산은 충분합니다.
결국 관건은 속도입니다. 시효가 완성되면 아무리 또렷한 채권도 손에서 빠져나가므로, 되받을 뜻이 있다면 미루지 않는 것이 최선입니다. 오늘 이야기가 받을 권리를 세우는 단계였다면, 그 권리를 근거로 상대의 재산에 직접 손을 대어 돈을 뽑아내는 강제집행, 그리고 상대가 미리 재산을 숨겼을 때 이를 되돌리는 대응은 그다음 단계의 몫입니다. 스스로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면 시효가 끝나기 전에, 또 상대가 재산을 빼돌리기 전에 전문가의 조언을 한 번 들어 두는 것만으로도 대응의 방향이 크게 달라집니다.
이 글은 위광복 변호사(법무법인 원결 대표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가사법·노동법 전문변호사, 연세대학교 겸임교수, 법무부장관·보건복지부장관 표창 수상)가 작성했습니다. 구체적 사안에 대한 상담이 필요하시면 변호사와 직접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법률 상담이 필요하시면 화면에 있는 법무법인 원결 카카오톡 채널로 편하게 문의해 주세요.
참고 법령: 민법 제162조, 제165조, 제166조, 제168조, 제174조, 제379조, 제467조 / 상법 제64조 / 이자제한법 제2조 / 민사소송법 제8조, 제462조 /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제3조
참고 판례: 대법원 2014. 7. 10. 선고 2014다26187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