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할 때 서명한 동종업계 이직 금지 서약서는 서명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이직을 막지는 못합니다. 법원은 이런 경업금지 약정의 효력을 엄격하게 심사해, 기준에 미달하면 약정 자체를 무효로 보고 위반해도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설령 약정이 유효해 위반이 되더라도 서약서에 적힌 금액을 그대로 물어내는 경우는 오히려 드뭅니다. 경업금지 약정이 어떤 때 효력을 가지고 어떤 때 무효가 되는지, 위반하면 실제로 어떤 책임을 지는지 정리했습니다.
서약서에 서명했으면 무조건 지켜야 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경업금지 약정은 근로자의 헌법상 직업선택의 자유와 근로권을 제한하기 때문에 일반 계약과 다르게 취급됩니다. 계약은 당사자가 자유롭게 정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회사가 사적인 계약으로 근로자의 이직 자체를 과도하게 묶는 것까지 허용되지는 않습니다. 대법원도 경업금지 약정이 직업선택의 자유와 근로권을 과도하게 제한하거나 자유로운 경쟁을 지나치게 제한하면 민법 제103조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법률행위로서 무효라고 보았습니다(대법원 2010. 3. 11. 선고 2009다82244 판결). 서명을 했더라도 내용이 지나치게 가혹하면 효력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약정이 유효한지는 무엇으로 판단하나요?
법원은 여섯 가지 요소를 종합해 약정의 유효성을 판단합니다(대법원 2009다82244 판결, 대법원 2021. 9. 9. 선고 2021다234924 판결 등). 보호할 가치 있는 사용자의 이익이 있는지, 경업 제한의 기간·지역·대상 직종이 적절한지, 근로자에게 별도의 대가가 제공됐는지, 근로자가 퇴직 전에 어떤 지위에 있었는지, 퇴직 경위가 어땠는지, 그리고 공공의 이익과 그 밖의 사정이 그것입니다. 어느 하나로 결론이 정해지지 않고, 각 요소의 비중을 종합해 약정 전체의 합리성을 따집니다.
회사가 지키려는 정보면 다 보호받나요?
회사만의 고유한 가치가 있어야 보호됩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의 영업비밀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그 회사만의 고유한 정보나 노하우, 고객관계, 영업상 신용 정도라면 보호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거꾸로 그 업계에서 이미 두루 알려진 일반 지식이거나 종사자라면 누구나 엇비슷하게 갖춘 정보라면, 지킬 가치는 미약하다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실무에서 약정이 무효로 판단되는 가장 흔한 조합이, 보호가치는 약한데 기간은 길고 대가도 없는 경우입니다.
기간이 2년이면 너무 긴 건가요?
기간과 지역, 대상 직종이 사실상 이직 자체를 봉쇄하는 수준이면 무효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몇 년까지가 안전하다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실무에서는 대체로 1년 안쪽이면 무리 없이 인정되는 반면, 2년을 넘기기 시작하면 지킬 이익이 얼마나 큰지와 그만한 대가가 주어졌는지에 따라 결론이 엇갈리곤 합니다. 맡게 될 직종의 범위가 그동안 쌓아 온 경력 전부를 덮어 사실상 어디로도 옮길 수 없게 만든다면, 그 자체로 지나치다고 볼 여지가 커집니다.
대가 없이 서약서만 썼다면 어떤가요?
별도의 대가가 없었다면 약정의 효력이 부정되는 쪽으로 작용합니다. 경업금지 약정을 지키는 동안 근로자는 회사를 나온 뒤 한동안 자기 전문 분야에서 일할 기회를 접어야 하는 손해를 떠안게 되므로, 그에 걸맞은 대가, 이를테면 별도의 수당이나 보상금, 명예퇴직금 같은 것이 주어졌는지가 큰 몫을 차지합니다. 이렇다 할 보상도 없이 입사할 때 받아 둔 서약서 한 장만 내세워 이직을 가로막으려 했다면, 약정의 효력은 부정되는 쪽으로 기울기 쉽습니다. 여기에 더해 근로자의 퇴직 전 지위와 퇴직 경위도 함께 봅니다. 회사의 핵심 정보에 깊이 접근했던 사람일수록 약정의 효력이 인정될 가능성이 크고, 반대로 권고사직이나 정리해고로 부득이 나간 경우라면 회사가 이직을 막을 명분이 약해집니다.
약정이 유효한데 위반하면 어떻게 되나요?
회사는 보통 전직금지 가처분과 손해배상 청구로 책임을 묻습니다. 전직금지 가처분은 이직 자체를 막아 달라는 신청이고, 손해배상은 위반으로 회사가 입은 손해를 물리는 것입니다. 회사가 실제로 입은 손해를 하나하나 증명하기가 만만치 않다 보니, 적잖은 회사가 서약서에다 위반하면 퇴직금의 몇 배를 토해 낸다거나 얼마의 위약금을 문다는 식의 손해배상 예정 조항을 미리 박아 둡니다.
서약서에 적힌 위약금을 그대로 다 물어야 하나요?
그대로 무는 경우는 오히려 드뭅니다. 두 가지를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근로기준법 제20조는 사용자가 근로계약 불이행을 빌미로 위약금이나 손해배상액을 예정하는 계약을 맺지 못하도록 막고 있지만, 대법원은 이 규정이 근로계약이 이어지는 동안의 강제근로를 막으려는 취지여서 퇴직한 뒤의 관계를 다루는 경업금지 약정의 손해배상 예정에까지는 미치지 않는다고 봅니다. 그래서 경업금지에 딸린 위약금 약정이 그것만으로 근로기준법을 어겨 무효가 되는 일은 없습니다. 다만 약정해 둔 손해배상 예정액이 부당하게 많다면, 법원은 민법 제398조 제2항에 기대어 직권으로 이를 깎을 수 있습니다. 한 주류회사의 특판 지점장이 퇴직위로금으로 24개월분 평균임금, 그러니까 약 1억 4천만 원을 받으면서 회사를 떠난 뒤 2년 안에 경쟁사로 옮기면 그 돈을 전액 되돌려 놓기로 약정했던 사건이 있습니다. 여기서 법원은 위반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무턱대고 전액을 반환하게 한 것은 지나치다고 보아, 그 4분의 1 남짓인 3,500만 원으로 낮췄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3. 2. 6. 선고 2012가합75531 판결). 위반이 얼마나 무거운지, 회사가 실제로 본 손해가 어느 정도인지, 근로자의 형편은 어떤지를 두루 헤아려 조정한다는 뜻입니다.
이직 전에 무엇부터 확인하면 될까요?
경업금지 약정은 서명만으로 저절로 효력이 서는 것도, 어겼다고 해서 서약서에 박힌 액수를 고스란히 떠안는 것도 아닙니다. 이직을 저울질하고 있다면 다음 세 가지부터 짚어 보시기 바랍니다. 회사가 지켜 내려는 그 정보가 과연 회사만의 것이라 할 고유한 가치인지, 묶어 둔 기간과 대상 직종이 상식적인 선을 넘지는 않는지, 경업금지를 감수하는 대가로 따로 보상을 챙긴 적이 있는지입니다. 물론 약정의 유효성은 여섯 요소를 두루 저울질하는 사안별 판단이라, 기간이 짧다거나 대가가 없다는 한 가지 사정만으로 결론이 나지는 않습니다. 여기에 회사가 전직금지 가처분까지 신청하면 새 일터로의 출근이 한동안 가로막힐 수도 있으니, 이직을 진지하게 마음먹은 단계에서 약정의 효력을 미리 확인해 두는 편이 가장 든든합니다.
이 글은 위광복 변호사(법무법인 원결 대표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가사법·노동법 전문변호사, 연세대학교 겸임교수, 법무부장관·보건복지부장관 표창 수상)가 작성했습니다. 구체적 사안에 대한 상담이 필요하시면 변호사와 직접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법률 상담이 필요하시면 화면에 있는 법무법인 원결 카카오톡 채널로 편하게 문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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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법령: 민법 제103조, 제398조 / 근로기준법 제20조
참고 판례: 대법원 2010. 3. 11. 선고 2009다82244 판결, 대법원 2021. 9. 9. 선고 2021다234924 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13. 2. 6. 선고 2012가합75531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