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사직서를 내밀며 그만두기를 권할 때, 흔히 함께 따라오는 두 마디가 있습니다. 버티면 어차피 해고될 테니 좋게 정리하자,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사직서를 써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 두 전제는 언뜻 그럴듯하지만 그대로 받아들이고 결정하기엔 부정확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사인을 하는 순간 해고를 문제 삼을 길이 제한되고, 실업급여 역시 스스로 큰 잘못을 저질러 해고된 경우가 아니라면 해고를 당한 사람도 원칙적으로는 받을 수 있는 돈이기 때문입니다.
'권고사직'과 '해고', 법적으로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명칭이 아니라 실질로 구분되며, 가장 중요한 기준은 근로관계를 끝내자는 의사를 누가 먼저 표시했고 상대가 거기에 동의했는가입니다. 해고는 사용자가 한쪽 뜻만으로 관계를 잘라 내는 것이라, 근로자가 응하든 말든 사용자의 결정으로 고용이 끝납니다. 이에 비해 권고사직은 사용자가 퇴사를 권하고 근로자가 그 제안을 받아들여 사직서를 건네는 형태여서, 겉보기에는 근로자가 제 발로 나간 모습이 되고 법적으로는 양쪽이 뜻을 모아 근로관계를 접은 합의해지로 다뤄집니다. 이 구분이 결정적인 까닭은, 법이 마련해 둔 방패가 오직 해고에만 씌워져 있어서입니다. 사용자는 정당한 이유 없이는 근로자를 내보낼 수 없고(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 해고에 나서려면 그 사유와 시기를 서면으로 알려야 효력이 생기며(같은 법 제27조), 부당한 해고라면 근로자는 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할 문이 열립니다(같은 법 제28조 제1항). 반대로 합의로 물러난 모양새가 되면 이런 장치들이 끼어들 틈이 사라집니다. 다만 사직할 마음이 없는 사람을 압박해 억지로 쓰게 한 것이라면, 종이 위 이름이 사직서라도 그 속은 해고로 읽힐 수 있습니다.
사직서에 사인하면, 정확히 무엇을 포기하는 건가요?
해고를 다툴 통로가 눈에 띄게 제한됩니다. 부당해고 구제신청이라는 제도는 애초에 해고가 있었다는 사실을 발판으로 삼는데, 스스로 사직서를 낸 순간 회사는 합의로 나간 것이지 자른 적이 없다는 논리를 펼 수 있게 됩니다. 노동위원회나 법정에서 그 다툼이 붙으면, 근로자가 서명한 사직서 한 장이 회사에게는 든든한 방패 노릇을 합니다. 그렇다고 서명하면 아무것도 못 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은 사직할 뜻이 없는 근로자에게 사직서를 받아 이를 수리하는 의원면직 형식으로 고용을 끝냈다면 그 알맹이는 사용자 한쪽의 의사에 따른 해고이지만, 그런 사정이 아니라면 사직의 의사를 사용자가 받아들여 합의해지로 마무리된 것이라 해고로 보기 어렵다는 태도를 굳혀 왔습니다(대법원 2017. 2. 3. 선고 2016다255910 판결 참조). 정작 어려운 대목은, 사직할 뜻이 없었다는 사실을 근로자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어쩔 수 없이 썼다는 말만으로는 모자라고, 이미 사인한 뒤에 뒤집는 일은 사인하기 전에 멈춰 서는 것보다 훨씬 고되고 결과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사직서를 거부하면, 제가 더 불리해지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회사가 해고 카드를 꺼내 드는 순간, 앞서 본 규정들이 이번엔 전부 회사 발목을 잡기 때문입니다. 버티면 어차피 해고라는 말은 으름장처럼 들려도, 정작 회사가 해고를 강행하면 정당한 이유를 갖춰야 하고(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 해고의 사유와 시점을 서면으로 밝혀야 하며(같은 법 제27조), 최소한 30일 앞서 예고하거나 30일분이 넘는 통상임금을 얹어 줘야 합니다(같은 법 제26조. 근속 기간이 3개월이 안 된 경우처럼 법이 정한 예외에 들면 예고 의무를 벗습니다). 이 중 어느 하나만 틀어져도 근로자에게는 다툴 발판이 생깁니다. 여기에 경영난을 이유로 사람을 줄이는 정리해고라면 문턱이 한층 높아집니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실제로 있어야 하고, 해고를 피할 노력을 쏟아야 하고, 합리적이고 공정한 잣대로 대상자를 추려야 하고, 해고하려는 날을 기준으로 50일 전까지 근로자대표에게 알리고 성실히 협의를 거쳐야 합니다(같은 법 제24조). 이 절차를 감당하기가 버거워 회사가 슬그머니 권고사직으로 방향을 트는 일이 실무에서 잦습니다. 한 가지, 여기까지는 상시 근로자가 다섯 명 이상인 사업장을 놓고 한 이야기이니, 그에 못 미치는 곳이라면 부당해고 구제신청 자체가 열리지 않는다는 점부터 확인해 두셔야 합니다.
권고사직이면 실업급여가 자동으로 나오나요?
사직서를 써야 나온다는 말도, 권고사직이니 무조건 나온다는 말도 모두 반만 맞습니다. 실업급여를 받을 자격이 막히는 상황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고용보험법 제58조). 첫째는 본인의 중대한 잘못으로 해고된 때입니다. 형법이나 직무와 얽힌 법을 어겨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았거나, 사업에 큰 지장을 주고 재산상 손해를 입혔거나, 마땅한 이유 없이 오래도록 무단으로 결근한 경우가 여기 듭니다. 둘째는 제 사정으로 회사를 떠난 때인데, 자리를 옮기거나 장사를 하려고 나온 경우와 나란히, 앞서 말한 중대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해고를 면한 채 사업주의 권유로 물러난 경우가 여기에 포함됩니다. 그래서 두 가지 통념이 나란히 무너집니다. 해고를 당했다는 이유로 실업급여가 막히는 것이 아니고, 권고사직이라는 껍데기만으로 수급이 보장되지도 않습니다. 실무에서 진짜 승부처는 이직 사유가 서류상 어떻게 적히느냐입니다. 회사가 고용보험 상실신고에 근로자가 스스로 나갔다고 기재하면 수급이 가로막힐 수 있지만, 마지막 결정은 회사가 낸 서류와 함께 고용센터가 이직에 이른 사정 전체를 놓고 내립니다. 신고가 사실과 어긋난다면 바로잡아 달라고 요구할 수 있으니, 권고를 받아 나오게 된 정황을 뒷받침할 자료를 미리 챙겨 두는 편이 좋습니다.
이미 사직서를 냈다면, 돌이킬 방법이 있나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낸 사직서를 거둬들이는 길과, 사직서가 있더라도 실은 해고였다고 맞서는 길입니다. 먼저 철회하는 길입니다. 사직서를 낸 지 얼마 안 됐고 회사가 아직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단계라면, 사직의 의사표시를 거둬들일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습니다. 그 의사표시를 합의해지를 청하는 것으로 보느냐 일방적으로 계약을 끊겠다는 통보로 보느냐에 따라 결론이 엇갈리므로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되돌리려면 한나절이라도 서두르는 편이 낫고 문자처럼 흔적이 남는 방법으로 곧장 뜻을 전해 두어야 합니다. 다음은 사직서 그 자체를 걸고넘어지는 길입니다. 사직할 뜻이 없는 사람에게 억지로 받아 수리한 것이라면 알맹이는 해고이고, 대법원은 이를 가릴 때 사직서를 내게 된 경위, 거기 적힌 내용과 회사의 관행, 퇴직을 권하거나 종용한 방법과 강도와 횟수, 사직서를 내지 않았을 때 닥칠 불이익의 크기, 사직서를 내는 대가로 돈이나 이익이 오갔는지, 제출 전후로 근로자가 보인 태도까지 두루 묶어 따진다고 합니다(대법원 2017. 2. 3. 선고 2016다255910 판결 참조). 그렇지만 문턱 자체가 높아서, 사직 말고는 달리 고를 길이 없는 처지로 내몰렸다는 사정을 구체적인 자료로 내보여야 합니다.
사직서를 받아 든 지금, 당장 무엇부터 해야 하나요?
서명을 미루고, 오간 정황을 남기고, 회사의 진짜 의중을 서면으로 확인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며칠 안에 답을 내놓으라 재촉하는 사정은 대개 회사 쪽 사정이지 근로자 쪽 사정이 아니니,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해 두면 됩니다. 그 시간을 벌었다면 근거가 될 자료부터 모아 두십시오. 자신이 직접 낀 대화를 녹음해 두는 일은, 통신비밀보호법이 막는 타인 사이의 대화를 몰래 엿듣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러니 퇴사를 권유받는 자리에서 어떤 말이 오갔고 거절하면 어떻게 하겠다고 했는지가 나중에 결정적인 자료로 남습니다. 주고받은 문자와 메신저, 이메일도 함부로 지우지 마십시오. 그다음엔 회사의 뜻을 또렷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만두라는 이유를 서면으로 달라고 청해 보면, 회사가 서면을 내주면 그 자체가 근거로 쌓이고 서면 없이 해고로 나아가면 서면통지를 어긴 문제가 회사에 남습니다. 권고사직을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정했더라도, 아무 조건 없이 사직서만 쓰는 것과 위로금과 남은 연차의 정산, 언제 퇴사하는지, 이직 사유 신고를 어떻게 할지까지 매듭지어 놓고 쓰는 것은 결과가 판이합니다. 끝으로, 회사가 들이미는 합의서에 앞으로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문구가 박혀 있다면 부당해고를 다투거나 밀린 임금을 청구할 권리마저 접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으니 그 적용 범위를 반드시 짚어야 하고, 부당해고를 다투는 구제신청은 해고가 실제로 있은 날부터 석 달 안에 넣어야 하며(근로기준법 제28조 제2항) 그 기산일은 해고의 효력이 실제로 생긴 날이라 통보를 받은 날과 어긋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서명하기 전에, 꼭 따져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권고사직이 언제나 잘못된 결정인 것은 아닙니다. 지루한 다툼을 이어 가느니 조건을 잘 다듬어 마무리 짓는 편이 나은 경우도 많고, 오래 몸담은 사람이라면 회사도 해고로 밀어붙이기가 껄끄러워 협상의 틈이 열리기도 합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내려놓는지 알고서 고르는 일입니다. 사인하기 전에는 손에 쥔 선택지가 여럿이지만, 사인한 뒤에는 그 폭이 확 줄고 뒤집기 위한 입증의 짐도 훨씬 무거워집니다. 지금 눈앞에 사직서가 놓여 있다면, 우선 서명을 미룬 채 상시 근로자 수와 회사가 내세운 이유, 그동안 오간 대화부터 하나씩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스스로 가늠이 서지 않는다면, 사인하기 전에 변호사와 마주 앉아 짚어 보시길 권합니다.
이 글은 위광복 변호사(법무법인 원결 대표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가사법·노동법 전문변호사, 연세대학교 겸임교수, 법무부장관·보건복지부장관 표창 수상)가 작성했습니다. 구체적 사안에 대한 상담이 필요하시면 변호사와 직접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법률 상담이 필요하시면 화면에 있는 법무법인 원결 카카오톡 채널로 편하게 문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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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법령: 근로기준법 제23조, 제24조, 제26조, 제27조, 제28조 / 고용보험법 제58조
참고 판례: 대법원 2017. 2. 3. 선고 2016다255910 판결